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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절제공>모헌공휘방행록(慕軒公諱方行錄)
慕軒公諱方行錄 公姓趙諱方字國瑞號慕軒系出玉川曾祖諱元吉恭讓朝功勳大匡輔國光祿大夫封玉川府院君祖諱琰保功將軍節制都尉考諱淵以節行贈兵曹參判娶貞夫人陽川許氏大司諫晠之女生公於成化丙子公天性至孝亦尚文學甞事兩親供奉之節養志之道方比於曾閔之誠擧世咸服親戚矜式母親宿病甞糞病劇思食牛肝倉卒求之不得公白割牛腹出肝進之病遂差焉父親至殞絶之境公與其妻全氏沐浴致齊至誠祝天大小便以手受出夜夢白衣老人以藥丸二介投之曰服此必蘇矣驚覺乃夢也即地向天四拜因服快蘇此皆誠感皇天孝通神明也自官以來肉賞賜請問孝養之方公揖曰我無誠焉孝何可對官曰此眞孝子也前後親喪六年廬墓遵禮無闕聞于朝旌閭碑在校村前事見三綱錄輿地勝覽公之七世孫忠信從余遊以家乗一秩孝行錄一卷來示請記余觀其述則公之子孫或以行誼稱之或以忠節錄功猗歟休哉輔孝爲忠古巳聞之玆莫非公之至孝垂諸後昆之耶孝感之心油然而作焉藹然而興焉不顧僭越畧以拙文記之云爾 陶菴 李縡 모헌공휘방행록(慕軒公諱方行錄) 공의 성은 조씨요, 이름은 方, 자는 國瑞이며 호는 慕軒인데 씨족의 계통은 玉川에서 나왔다. 曾祖는 元吉인데 고려 恭讓王때에 功勳이 있어 大匡輔國光祿大夫로 玉川府院君에 봉해졌다. 祖는 琰인데 保功將軍으로 節制都尉를 지냈다. 아버지의 이름은 淵인데 절개 높은 행실로 兵曹參判에 贈職되었으며, 貞夫人 陽川許氏는 大司諫을 지낸 晠이라는 분의 따님으로 一四八六年에 公이 태어났다. 公은 천성에 지극한 효심이 있었고 또한 文學을 숭상하였다. 일찍이 양친을 섬길 때 공양하고 받드는 예절과 의를 따르는 도가 曾子와 閔子의 정성스러움에 견줄만하여 온 세상에서 모두 탄복하였고 친척들도 존경하였다. 어머니의 고질적인 병에 대변을 맛보기도 하였고 병환이 위독해져 소의 간을 먹고 싶어 하시었으나 급히 구하여도 구하지 못하자 公은 몸소 소의 배를 가르고 간을 꺼내어 어머님께 올려 바쳤으니 병환이 마침내 차도가 있었다. 아버지께서 운명할 즈음이 되자 공과 아내 金氏가 목욕하고 근신하면서 지성스럽게 하늘에 빌었고 대소변을 손으로 받아 내었다. 밤에 꿈을 꾸었는데 흰 옷을 입은 노인이 알약 두개를 던지면서 「이것을 복용시키면 반드시 소생하리라」 하여 놀라 깨어보니 바로 꿈이었다. 마당으로 나아가 하늘을 향해 네 번 절하고 약을 복용토록 하였는데 완쾌하여 회복하였으니 이런 모든 것은 정성이 皇天을 감동시킨 것이요. 효도가 神明을 통하게 한 것이었다. 원님께서 쌀과 고기로 상을 내리고 효도로 봉양하는 방법에 대해 물으니 公이 揖하고 나서 「나는 정성도 없었는데 어떻게 효도를 대답하겠습니까」라고 하니 원님이 「이 사람이야 말로 진실한 효자로구나」라고 하였다. 앞뒤로 어버이 상을 당하여 六年동안 廬墓하였으며 禮를 준수하는 데도 흠결이 없었다. 이러한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旌閭碑가 校村 마을 앞에 있으며, 그러한 사실에 대한 기록이 三綱錄과 輿地勝覽에 실려 있다. 公의 七代孫 忠信은 나와 함께 노니는 사람인데 家乘 한 권과 孝行錄 한 권을 가지고 와 보이면서 나에게 기록해 주기를 청하였다. 내가 그 기술해 놓은 것을 보니, 公의 자손중에는 더러 行誼로 칭찬받은 사람도 있고 더러는 孝節로 공신에 녹봉된 사람도 있으니 참으로 훌륭하도다. 효도를 바꾸면 충성이 된다는 것은 이미 옛부터 알려진 일이지만 이런 점이야말로 公의 지극한 효성이 후손들에게 모범을 보여준 결과가 아니겠는가. 이 글을 읽은 사람에게는 효도하려는 감동적인 마음이 유연하게 일어날 것이고 울연히 솟아오를 것이다. 참담하게도 분수 넘는 줄도 모르고 간단하게 졸렬한 글로 이처럼 기록한다. 도암 이재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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